두견척촉(杜鵑躑躅)
진달래와 철쭉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杜 : 막을 두
鵑 : 두견새 견
躑 : 머뭇거릴 척
躅 : 머뭇거릴 촉
어려운 글자로 된 이 성어는
진달래와 철쭉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봄을 대표하여 곳곳에 축제도 벌이는 이들 꽃은
자주 일컫는 말로는 서로가 딴판이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하지만,
철쭉은 개꽃이라 부른다.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고 염소나 양도 피한다고 한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란 구절의 시
‘진달래꽃’은 김소월(金素月)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진달래꽃이라면 김소월의 시가 유명하지만
이 설화가 바탕이 된 시는 서정주의 ‘귀촉도’다.
백낙천도 ‘산석류-원구에게 주다(山石榴寄元九)’라는 시에서
‘구강의 3월에 두견이 날아와, 한 번 울어 한 가지를 피게 한다네
(九江三月杜鵑來, 一聲催得一枝開)’라고 했다.
다음은 조선 후기의 여성 죽서(竹西)
박씨가 열 살 때 지었다는 시이다.
어린이다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牕外彼外鳥 (창외피외조)
何山宿早來(하산숙조래)
應識山中事(응식산중사)
杜鵑開未開(두견개미개)
창문 앞 저 새야 말 물어보자
어디서 자고 이리 일찍 왔니
산속의 일을 너는 알겠지
진달래 피었나 안 피었나 가르쳐 주렴
아동문학가인 이원수(李元壽)의
‘고향의 봄’에도 등장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국문학자 조연현(趙演鉉)은
"먹을거리가 턱없이 모자라 주린 배를 부여잡고
넘어가던 보릿고개의 서러운 기억이 가슴 한편에
도드라져 있는 참꽃 피는 봄날"을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으로 서럽게 노래했다.
진달래꽃을 두견화(杜鵑花)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애달픈 이야기가 따른다.
진(秦)나라에 멸망한 고대 촉(蜀)나라의
망제(望帝)의 혼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전한(前漢)말기의 양웅(揚雄)이 지은
‘촉왕본기(蜀王本紀)’와 동진(東晋)의 상거(常璩)라는
사람이 지은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나온다고 한다.
망제는 나라를 빼앗긴 뒤 밤마다
‘불여귀(不如歸; 돌아가고 싶다)’라고
피가 나도록 울다 죽어 두견새가 되었다.
접동새, 자규(子規)로 불리는 두견새는
그래서 귀촉도(歸蜀道), 촉백(蜀魄), 망제의 이름을 따
두우(杜宇), 두백(杜魄)이라 하기도 한다.
망제의 피가 떨어진 곳에 피어난 꽃이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을 넣어 빚은 술이 두견주(杜鵑酒)이고
진달래 꽃잎을 따 찹쌀가루를 섞어 지진
화전(花煎)은 예전 행락객의 최고의 운치였다.
5월에 잎과 함께 가지 끝에 연한 분홍색의 꽃이 피는
철쭉꽃은 먹지는 못해도 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앞에서 머뭇머뭇하게 한다고 해서
척촉화(躑躅花)가 됐다고 한다.
실제 뜻으로 결단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는 뜻으로
많이 고전에서 사용됐다.
조선 명종 때의 문신 배용길(裵龍吉)의
철쭉을 읊은 시가 있다.
‘금역당집(琴易堂集)‘에 실려 있다.
躑躅臨池欲自誇(척촉임지욕자과)
孤䕺無力摠低斜(고총무력총저사)
철쭉이 못 가에서 자태를 뽐내나,
외로운 꽃떨기 힘없이 모두 기울었네.
春光已老花隨老(춘광이로화수로)
始酌叵羅欲賞花(시작파라욕상화)
봄날이 지나가니 꽃도 따라 시드는데,
이제야 술잔 잡고 꽃구경을 하려네.
봄에 흔한 꽃에 이처럼 여러 의미가 있는 것은 의외다.
아름다움에 취해, 흥에 겨워 꽃을 지나치기 전에
간단한 뜻을 새기면 더 의의가 있겠다.
-옮긴 글-